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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외부와 내부전경

美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이 문건은 1944년1945년에 작성된 미군의 군사 비밀 문건으로서 지금은 비밀 해제 되어 공개된 상태입니다.

해당 문건은 전자사료관 홈페이지에서도 열람 가능합니다.

전자사료관 http://archive.history.go.kr/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 AUS024_01_00C0002 검색하면

Intterrogation of 20 Korean Comfort Girls 라는 문서가 검색결과에 나옵니다. 바로 이 문서가 비밀 해제1944 미군 군사 비밀 문건 입니다.

클릭하여 조회하면 2번째 페이지부터 내용과 함께 SECRET(비밀문서) 도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요내용을 번역하면

- 위안부는 병사들을 위해 일본군에 붙여진 매춘부 (prostitutes ) 혹은 직업적인 종군 민간인 professional camp follower과 다름없다.

- 이 업자들의 권유는 풍성한 돈, 가족의 빚을 청산할 기회, 쉬운 일, 새로운 땅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는 장밋빛 전망등이었다. 이러한 업자들의 거짓된 설명 하에 많은 여자들이 해외에서의 일을 위해 모집되었고 선금으로 몇 백엔의 보상을 받았다.

- 여자들의 대부분은 무지하고 무학이었는데, 몇몇은 모집 이전에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의 종사자였다. 그녀들이 서명한 계약은 미리 선금으로 지급된 가족 연대채무의 액수에 따라 6개월에서 1년까지의 기간 동안 그녀들을 위안소 업자와 군의 통제하에 놓이게 하였다.

심문은 평균적인 조선인 위안부는 대략 25세 내외이며, 무식하고, 어린애같고, 이기적임을 보여준다.

- 그녀는 중국군과 인도군을 두려워한다.

- 미트키나에서 여성들은 대개 큰 2층 가옥(주로 학교 건물이었던)에서 생활했으며 각 여성마다 하나의 독립된 방을 제공받았다. 그 방에서 각각의 여성들은 생활하고, 자고, 비즈니스를 행하였다.

- 다른 장소들에 비해 버마에서 그들은 호사스러운 수준으로 살았다. 이는 버마에서의 2년째 생활에서 특히 그러하였다. 그들은 (병사들과 달리) 음식과 물품이 심하게 통제되어 배급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구매할 많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잘 살았다. 그들은 옷, 신발, 담배, 화장품을 살 수 있었으며 집으로부터 "선물 소포"를 우송받은 병사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

- 버마에 있는 동안 그들은 장교들과 다른 남자들과의 운동 경기에 참가하였으며 소풍과 각종 오락, 사교적 저녁 식사 등에 참가하며 스스로를 즐겁게 하였다. 그들은 축음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도시에서 쇼핑을 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 그들이 일하는 조건은 군에 의해 규제되었으며, (위안소 이용이 많아) 붐비는 지역에서는 규칙이 엄격히 적용되었다.

1. 사병 :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1회 이용 시간 20분에서 30분. 요금 1.5엔

2. 하사관 : 오후 5시에서 오후 9시. 1회 이용 시간 30분에서 40분. 요금 3엔

3. 장교 : 오후 9시에서 자정. 1회 이용 시간 30분에서 40분. 요금 5엔

- 위안부들은 객을 거절하는 특권이 허락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종종 고객이 너무 취했을 때 발생하였다.

- 위안부 업자는 여성들이 처음 계약시 받은 돈(선대금)이 얼마냐에 따라 위안부들의 총수입의 50에서 6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였다. 이는 평균적인 한 달 동안 한 위안부가 1,500엔 가량의 수입을 올리며 이 중 750엔을 업자에게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업자들은 식료품이나 기타 물품을 위안부들에게 고액을 받고 팔아 이 여성들을 힘들게 하였다.

- 1943년 후반에 일본군은 (위안소 업자에게) 빚을 다 갚은 여성들은 귀국할 수 있도록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위안부들 중 일부는 한국으로의 귀국을 허락받았다.

- 추가적인 심문은 이 여성들의 건강이 양호함을 보여준다.

- 군의관이 주 1회 정기적으로 위안소를 방문하였고 병에 걸린 여성이 발견되면 누구든 격리되어 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 평균적인 일본군은 '위안소'에 나타나는 것을 당황스러워하였다. 한 위안부는 이렇게 말하였다.

"위안소가 붐빌 때 (군인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수치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나 (군인들이 위안부와 사랑에 빠져) 청혼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위안부와 결혼을 하기도 하였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omfortwoman%E5%8B%9F%E9%9B%86ToBeRecruited.JPG

육지밀 제745호 (일본육군공문서)

일본군의 위안부 모집에 관한 건

(생략) (업자가) 일부러 군부의 명의를 사용하기 때문에 군의 위신이 손상되고, 일반인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중략) 모집하는 자의 모집 방법이 유괴와 비슷하여 경찰당국에 검거 취조를 받는 등 주의를 요하는 때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장래에 이들을 모집할 때는 파견군이 통제하여 이를 실행할 인물 선정을 주도하고, 그 실시에 있어서는 관계 지방 헌병 및 경찰 당국과 연계를 긴밀히 하여 군의 위신을 지키면서 사회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 업자가 군을 사칭해서 유괴와 비슷한 식으로 모집하고 있으니 치안당국이 단속하라는 명령.


■ 1945 미군의 조선인 징용 노무자 심문 보고서에서 위안부 언급 내용

전자사료관 → AUS023_08_00C0008 검색

조선인 징용 노무자 이백도, 백송근, 강기한을 심문함.

태평양에서 목격한 모든 매춘부(prostitutes )는 지원하였거나 부모가 팔았다. 만약 일본이 여자들을 끌고 갔으면 젊은이도 노인도 극도로 분노했을 것이다. 조선인들은 봉기했을 것이고 그 대가가 뭐가 됐든지간에 일본인들을 죽였을 것이다.


■ 만주 위안소 근처에 살던 일본인 할머니의 증언

만주 위안소 근처에 살던 일본인 할머니가 친분이 있던 조선인 위안부로부터 들었던 증언.

- 중개업자를 통해왔다

- 군인들이 전쟁터에 가기전에 가진 돈을 다 주고 갔다

- 그게 월급 보다 훨씬 크다


■ 위안부 문옥주의 책과 내용

표지


■ 도표정리

https://youtu.be/A-bzawVhEsg

 

설날 지 애비애미 한테 절하면 돈이라도 받지 ㅉㅉ

1.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보시다시피 다양한 자료가 존재한다.

후손으로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집단에게 선동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자료들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살펴봐야한다

2. 1997년부터 2002까지 실시된 일본의 위안부사과보상사업인 아시아여성기금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https://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4955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005264813Y

https://www.nocutnews.co.kr/news/4512435

3. 현 문재인 정부는 2015년 빅근혜 정권때 한일위안부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상태인데, 이를 철회하고 제대로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 따라서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통하여 일본이 지불한 보상금 100억원을 위안부 당사자분들의 심신치유와 노후복지에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댓글]

이게 어딜봐서 납치강간이야

아무리 나쁘게봐도 자발적 창녀의 돈을 포주가 많이 뜯어간, 그러니까 성폭행이 아니라 '빡센 계약' 정도의 죄구만

송금해달라고 일본인한테 돈을 맡겼다는것 자체가,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 날 수탈하는 놈한테 어떤 미친년이 송금해달라고 돈을 맡김? ㅋㅋㅋ 돈을 많이 벌었다는거에서부터 이미 NG지만 ㅋㅋㅋ


애초에 모르고 큰돈 준다는데 간게 아니라니까 조선시대 사람들이 무슨 병신들만 있는줄 아나

대충 다 알면서 가는거지

진짜 모르고 간 사람들도 있기는 할텐데 소수의 사람들일테고 절대 다수가 다 알면서 위안부로 간걸꺼다

그게 아니면 돈을 그렇게 준다는게 말이나 되나?

못배워 먹었다고 눈치까지 없는게 아님


위안부 관련 맞는 내용이긴 한데 다 저렇게 화려했던 건 아님

저기는 그래도 안전한 후방이나 태국 같은 곳 얘기고 최전방은 가혹했지

줄 서서 대준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일본 만화가가 그린 내용에도 나와

뭐 일제시대 이후 양공주들도 돈 잘 벌었다고 다 잘살기만 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좌좀들 주장처럼 미군의 성노예였다고 하는 것도 과장이고 자의로 한 사람 보다 인신매매나 강제인 경우가 많았던 것 처럼 당시 당사자 상당수는 일자리 구하려고 갓 상경해서 어리숙하고 잘 모르다 그리 된 거지 처음부터 창녀인 사람만 있었겠냐

일본군 위안부는 당시 군에서는 필요악이었지 아니면 젊은 병사들이 강간하고 성병걸리고 그러니까 군수업자 쓰는데 이것들이 기존 창녀를 넘어서 군대이름 팔아서 빚 많고 가난한 농민들 압박해서 딸들 반강제로 빚 대신 끌어가고 하는 부작용이 나오니 군에서 관리하고 그게 일본 현지 사정이었지 그러다 전선확대로 수요가 늘어서 조선하고 대만에서도 모집했는데 여긴 나이제한이 허술했고 그랬던 거다

일제시대 위안부 숫자는 부풀려진거지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가 이천오백만이라 그 연령대 젊은 처녀가 많아봤자 몇십만인데 무슨 20~30만인지 그럼 동네마다 한 집 걸러 위안부란 소린데 자금 생존자가 그정도 숫자일리가 없지

위안부가 하루에 30명을 상대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조선 위안부가 30만이면 매일 900만명의 일본군이 섹스를 했단건데 말도 안 되는 거고 보통 최전방으로 보내질 때 죽기 직전에 동정 떼고 죽게 하는 용도였고 아닌 경우 기회가 그렇게 쉽게 제공되는 게 아니지 군대가 무슨 섹스하러 가는 곳인줄 아나

당시 일본순 숫자는 천만 정도였으니까 위안부 숫자 대충 추정해볼 수 았고 그 중에서 일부인 조선여자도 추산 할 수 있다


일본이 처음부터 지금같이 강경한것이 아니고 역대총리는 물론이고 장관부터 여당대표까지 십수년을 사과 했는데 한국이 사과를 받지않고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고 수작을 부리니까 결국은 입장을 바꿔버린 결과다.

그 핵심단체가 위안부 지원단체였던 현 정의연이데, 2004년도에 일본정부에서 판결 결과로 인정받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정의연의 유착, 착복에 대해 고소 고발을 했었다.

그때 당시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는데 그 사건을 다 무시했다.

일본에서는 2차대전 피해자를 인정 사과하고 지원하려고 하는데, 대한민국은 그걸 역으로 국내 정치적 용도로 써먹고 이것을 이용해서 무려 20년간 정치와 유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일본이라도 강경한 입장으로 바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2020년에 이르러서는 위안부 지원단체 유착, 착복혐의를 수사 하니까 이제 강제징용 카드를 꺼내든다.

2차대전 피해국인것을 이렇게 오랜 세월 강조할거면 전국토가 유린 당하고 국민 삼백만명이 학살당한 6.25님침은 북한과 중공에게 왜 항의나 피해보상과 사과를 일체 요구하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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