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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망치와 농민의 낫을 상징하는 구 소련의 깃발
과거 6.25 전후만 봐도 알수있듯 박헌영이 좌익 빨갱이를 가장 많이 양성했던 지역으로 손 꼽히는 지역이 전라도였습니다. 전세계 모든 공산주의가 그랬듯이, 노동자와 농민을 그 대상으로 하여 세력을 확장을 하는데, 이는 해방 후 전라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남한은 공업시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였고, 북한지역에 중공업시설이 집중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해방후에 남한의 전기도 북한의 수풍발전소에서 공급을 받았을 정도)
그래서 북한 노동자 세력의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공산주의 세력이 되었습니다만, 남한은 북한에 비해 공업화가 되지 못하여 노동자세력을 공산주의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고, 농민이 그 대상이었는데, 바로 전라도가 농업이 가장 왕성했던 지역이었으므로 박헌영이 타켓으로 삼고 주 무대로 활동을 했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반면 별다른 곡창지대도 없고 공업화도 되지않이 생계가 막막한 남한의 경상도 지역의 사람들은 일제시대때 먹고 살기위해 만주, 일본 등지로 이주를 많이 했으며, 징용공이나 일본군에 자원을 많이 했죠. 그래서 중국의 조선족 후손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많이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겁니다.
아무튼 박헌영은 전라도에서 엄청나게 많은 농민출신 공산주의자들을 남로당에 가입을 시켰으며, 이들중 일부를 무장봉기 세력으로 양성을 했습니다. 소위 남부군, 즉 빨치산입니다.
이들 농민세력으로부터 확보한 식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산당원들을 계속해서 증원시켜 나갔는데, 어느 정도 세력이 구축이 되고 자신감이 붙자, 월북하여 김일성에게 "남침할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마침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반대를 무릎쓰고 유상매입 유상분배 농지개혁을 해버려서 전라도쪽 공산 봉기를 무력화 시켜버렸습니다. 엄청난 혜안에 탁월한 선택이었죠.
이렇게 북한은 빨갱이 적화에 농지가 제일 많은 전라도의 하층민. 소작농들을 이용 했던것이고, 만약 경상도나.충청도가 농지가 많았다면 북한은 당연히 그쪽을 선택 했을것입니다.
김일성과 박헌영 북한의 남남갈등 선전선동 포스터 쌀로 핵을 만드신 노벨상 수상자
즉 대한민국의 지역감정도 근간도 북한놈들이 악랄하게 이간질한 효과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박정희 대통령때의 강력한 반공정책과 눈부신 경제적 성과로 인해 잠시나마 사라지는듯 보였으나,(박정희 대통령 시절 전라도의 지지율은 상당했음)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자신의 지역적 정치입지를 다지고자 악의적인 호남홀대론을 계속 주창하며 5.18 광주사태를 촉발하는등 북한이 추구하는 남한사회내의 분열상을 더욱 부채질 하였죠. 그래서 김대중 빨갱이설이 전혀 근거 없지가 않다는겁니다.
이렇듯 대한민국 근대사에 큰 분열 갈등 사건들은 북한과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남한사회 분열과 갈등을 촉발시켜온 집단에게 근거없는 같은 민족 운운하며 햇볕정책 따위로 굴종적으로 퍼주기 정책에 연연한 김대중과 이를 이어받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활동하고 집권한 경상도 좌익 노무현.문재인 따위들에게 휘둘려서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허우적대는 전라도 사람들은 언제쯤이나 종북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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