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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국 근현대사' 검정 교과서 이후 국사 교과서들이 사용하고 있는 '일제 강점기'란 용어는 광복 이후 시기를 가리키는 '미제 강점기'와 짝을 이뤄 북한이만든 것이며, 독립운동 서술에서 외교 운동과 미주 지역 독립운동을 경시하고 미군과 소련군 포고문을 대비시킨 것 등이 북한 역사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30/2015103000163.html
<2003년 부터 공식적으로 쓰여졌다는 이야기>
1987년 6월 문교부는 국사 교과서 편찬 준거안(제 5차)을 만들고 개편 작업을 실행한다.
근데 논란이 되는 용어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라는 단어다.
1987년 6월 5차 교육과정에 따른 국사교과서 개편을 위한 (집필) 준거안에 일제시기를 일제강점기로 서술하라는 내용이 처음으로 들어갔다.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으로 인한 민주화 추세와 민중사학의 대두가 맞물리면서 민중사학이 처음으로 교과서에 반영된 것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용어는 북한이 만들어 낸 용어이다.
북한은 근현대사를 서술할때 1945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이전의 일제시기를 일제강점기라고 하고 이후를 미제강점기라고 표현한다.
대략 일제강점기이후 자기들(북한)은 독립국의 지위를 얻었지만,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남한정부는 파쇼괴뢰정권이라고 주장하는 말이라고 보면된다.
첫번째 문제 - 일제강점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의미
한국(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로 인식하는 북한 역사 해석을 동조하는것에 인정을 하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 - 발표한 시기
제 5차 준거안은 1987년 6월에 확정 발표, 북한 자료의 해금 조치는 1988년 7월 시작, 재야사학자들이 북한자료를 이전부터 접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요 경로는 북한 - 일본(조총련) - 한국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주의깊게 볼 사람이 있는데, 조동걸은 5차 준거안을 작성한 사람으로 민중사학이 본격적으로 대두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그는 "북한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민족 공동의식을 유지하는 불가결의 조건으로서, 분단 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북한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민족 의식을 유지함으로써 통일을 앞당기게 하는 길" 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민중 통일사학의 실체와 그 충격 p151 ~ 152>
<1987년도 민주화 바람타고 교육계획안에 슬쩍 끼워 넣은거라는 이야기>
그리고 '강점'의 사전적 의미는
인데 언제 우리가 한일합방 이전에 일본이랑 거하게 전쟁이라도 한번 치뤘습니까?
오히려 대한제국 나라의 주인이라 제국의 강과 산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 순종황제는
이렇게 황제의 칙유를 내렸습니다. 이게 무슨 강제로 차지 당한겁니까?
게다가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나라의 주인도 아니었습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개념은 해방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이후에나 헌법상 성립되는 말입니다.
고로 나라의 주인이자 소유주인 대한제국 황제가 위와같이 스스로 심사숙고해서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는게 가장 좋겠다고 백성에게 통보하고 넘겨주는데 여기에 무슨 '강점' 이란 단어를 붙이는지...
따라서 '일제강점기'란 단어는 종북주의적 사상을 따르는 단어이기도 하면서 사전적 의미에도 맞지가 않습니다.
그냥 간단히 예전처럼 "일제시대" "일제" 라고 하던가, 아니면 좀더 정확하게 아시아 각국에서 널리 통용하는 '일본통치기' 란 용어도 적당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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