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성명서] 이영훈 교수 연구에 대해 조정래 소설가는 낙인찍기 대신 역사토론으로 임하라

조정래 작가가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반일 종족주의』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에 대해 “신종 매국노이자 민족 반역자”라고 비난했다.

조 작가는 “그(이영훈 교수)의 말은 다 거짓말”이라며 이 교수가 2007년 계간 ‘시대정신’에 기고한 논문 등에 실은 자신의 소설 ‘아리랑’에 대해 ‘광기 어린 증오의 역사소설’ ‘조작됐다’ 등이라고 밝힌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시대정신’에 실린 소설 ‘아리랑’의 내용과 이영훈 교수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1. 소설 ‘아리랑’에는 지주를 크게 다치게 한 차갑수라는 농민을 김제경찰서 죽산주재소장이 마을 당산나무에 결박하고는 ‘조선경찰령’에 따라 즉결 총살한 것으로 돼있다. 이에 대해 이영훈 교수는 “소설은 토지조사사업 전 기간에 걸쳐 이런 사례가 전국적으로 4000여 건이나 되었다고 했지만, ‘조선경찰령’ 따위의 법령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평야가 소설에서처럼 원래부터 비옥한 곡창지대가 아니라 황무지였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입장이다. 이 교수는 “1910년대까지 곳곳에 갈대가 무성했던 황량한 들판이 오늘과 같은 풍요로운 곡창지대로 변한 것은 식민지기에 걸친 수리사업 때문이었다”면서 “김제평야 일대는 한국 근대 수리사업의 발상지”라고 강조했다.

3. ‘아리랑’에서는 1944년 지시마(千島) 비행장 공사 당시 조선인 노무자 1000명이 몰살당했다는 내용으로 가장 참혹한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영훈 교수는 그와 같은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상에서 보듯 조 작가와 이 교수의 견해 차이는

△‘조선경찰령’ 존재와 즉결총살 여부

△‘수리사업’의 존재와 효과 여부

△지시마 비행장 조선인 몰살에 대한 진위 여부로 모아진다.

그리고 이영훈 교수가 결론부에서 분석한 “일제하 식민지기는 수난과 모멸의 시대였지만, 새로운 학습과 성취의 시대이기도 했다”는 점이 논제가 된다.

그럼에도 조 작가는 ‘반민특위’를 부활시켜 150만~160만 친일파를 전부 단죄해야 한다며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을 징벌하는 법 제정 운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인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도외시한 채 조 작가가 자의적으로 낙인을 찍어 법적 조치 운운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다름 아니다.

조 작가는 알아야 한다. 위 3개항과 결론부에 대해 이견이 있으면 조 작가가 국민 앞에 당당하게 상대측에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일체의 낙인찍기는 파시즘/나치즘에 도움이 될 뿐이다.

2020.10.12.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일본 유학 자체를 친일로 규정한 조정래는 :

조정래 본인 애비의 일본유학도 문제지만, 비구, 비구니로 대표되는 조선불교와는 완전 대척점에 선 왜색불교의대처승(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리는 중)이었다.

조정래의 논리대로 말하자면 대처승은 정통 조선 불교를 압살하려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종교식민지 정책의산물이며, 한국인이 대처승이었다면 이는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종교 첨병으로 가장 악질적 친일제국주의 매국노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육이오국제공산군침략전쟁 휴전후 가장심열을 기우려 탈일본화를 한 일이, 독도경비대 창설및 전국사찰의 대처승을 강제 축출후 대한조계종(비구,비구니승)을 만들어 호국불교의 전통을 유지한것이다.

自傳(자전) 에세이 나의길 <29> 구만리장천 떠돈「恨(한)의 모닥불」 1990.10.28 동아일보 8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28002091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0-28&officeId=00020&pageNo=8&printNo=21282&publishType=00010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ewslibrary.naver.com

또한 국화옆에서의 작가 미당 서정주의 제자이기도 했고, 조정재 부인을 문단에 등단 시켜주고, 본인 결혼식 주례까지 섰던 서정주를 "수십년을 비판받아 마땅하다" 며 친일작가라며 단죄 하겠다고 날뛰기도 했다.

그럼 결혼식 때는 미처 친일한줄 몰랐나?

사실 조정래가 미당 서정주를 친일파로 몰아 비판한 이유는, 해방후 이승만 대통령 전기를 집필하고, 전두환 대통령 집권시기인 1986년 전두환의 56세 생일축시를 쓰고, 1987년 4.13 호헌조치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발언 하며 학생운동을 비판한 이유가 더 클것이다. 즉, 자신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스승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는 문학사적 패륜의 길을 택한것이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