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생각 주로 한반도에서 사용되고있는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15 세기에 만들어진 한글을 생각해 보자. 먼저 현재 한국의 PC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코딩 된 한글 표를 참조하십시오. 1100에서 115E까지 95 개가 하츠네으로 쓰이는 자음. 1161에서 11A7까지 71 개가 중음라는 모음. 11A8에서 11FF까지 88 개가終音(받침)라는 자음 이 254 개의 문자 조합을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있는 한글로되어 총 약 10 만 개 이상의 문자 수 계산된다. 한국의 워드 프로세서는 이러한 문자를 사용하여 인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드 1140의 한글 자음 "△"하지만 이것은 Z 음과 같습니다. 한국인은 z 음의 발음이 서툴러서 현재의 한글 표 자음은 없습니다. 세종은 Z 소리도 필요 하다며 ..
지난 2021년 1월 22일 강창일 신임 주일 한국대사는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2015년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한국 정부가 파기한 적이 없고 유효하다”고 밝히며 “한‧일 양국이 새로운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 ‘천황(天皇)’ 대신 ‘일왕(日王)’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일주의자가 ‘천황폐하’라는 존칭까지 동원한 발언은 듣는 이를 어리둥절케 하였다. 물론 이는 2021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 간 ‘공식적인 합의’였다고 번복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입장을 180도 뒤집은 문재인 정권 하지만,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성사시킨 한‧..
1963년 12월 17일 단군(檀君) 성조(聖祖)가 천혜의 이 강토 위에 국기(國基)를 닦으신 지 반만 년, 면면히 이어온 역사와 전통 위에 이제 새 공화국을 바로 세우면서, 나는 국헌(國憲)을 준수하고 나의 신명(身命)을 조국과 민족 앞에 바칠 것을 맹세하면서, 겨레가 쌓은 이 성단(聖壇)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3000만 동포들이여! 나는 오늘 영예로운 제3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나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보람 있는 이날의 조국을 보전하기에 생명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공산침략에서 나라를 지켜 온 충용(忠勇)스러운 전몰(戰歿)장병, 그리고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한 영웅적인 4월 혁명의 영령(英靈) 앞에 나의 이 모든 영광..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기념사(1948년 8월 15일) 外國(외국)貴賓(귀빈)諸氏(제씨)와 나의 사랑하는 동포여러분.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式(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民國(민국)이 새로 誕生(탄생)한 것을 兼(겸)하여 慶祝(경축)하는 것입니다 이날에 동양에 한 古代)國(고대국)인 대한민국정부가 회복되어 40여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투쟁하여 온 결실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내 평생에 제일 緊重(긴중)한 시기입니다. 내가 다시 고국에 돌아와서 내 동포의 自治(자치)自主(자주)하는 정부 밑에서 자유공기를 호흡하며 이 자리에 서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이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대통령의 존귀한 지위보다 대한민국의 한 公僕(공복)..
[Why Times 정세분석 570] 한국 조롱한 시진핑, “6.25, 적을 이긴 정의의 승리” - 6.25를 ‘정의와 평화의 승리’라 말하며 참전 정당화 - 역사를 왜곡하고 패배를 뒤집은 시진핑 - ’항미원조‘? 한국을 우롱하고 능멸하는 행위 ▲ 시진핑 주석이 19일 베이징(北京)의 인민혁명군사박물관의 `항미원조 70주년 전시회`를 참관하는 자리에서 중국의 6.25전쟁 참전을 정의와 평화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사진=중국정부망]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주석이 19일 중국의 6.25전쟁 참전을 정의와 평화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나섰다고 인민일보가 20일 보도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날 베이징(北京)의 인민혁명군사박물관의 '항미원조 70주년 전시회'를 참관하는 자리에서 "70년 전 평화..
여진족 조선에 귀화 조선초기 조선왕조실록에는 태국인, 인도네시아 사람,. 이슬람교도, 중국인, 일본인, 만주지역에 흩어져 사는 야인(野人.여진족)등 외국인이 조선에 귀화하여 정착해 살아가는 모습이 자세히 소개 되어있다. 특히 여진족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북청무해대에는 삼국시대부터 귀화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중종실록 중종30년(1535) 10월9일 압록강과 두만강 밖에 거주하던 여진 종족은 좋은 말이 새끼를 낳으면 조선에 바쳤고, 흉년이 들어 농사를 망치면 조선에 곡식을 빌리러 와... 시간이 흐르면서 여진족들은 조선에 귀화하여 정착생활을 하였다. 조선 초기 동북쪽 국경 지역에서 조선과 여진 부족간 충돌이 잦았는데 조선 조정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여진족 추장 가족 중 신체가 건강하고 무예가 뛰어난 인..
일본과 한국은 개항의 시기가 300년 정도 차이가 난다. 1543년 일본열도 최남단 가고시마 남쪽 다네가시마에 중국해적 왕지와 포르투갈인 페르낭 멘데스 핀투가 탄 배가 표류 섬의 영주 다네가시마 도키다카가 포르투갈 상인에게 두정의 화승총 구입 한후 도검제작자에게 화기 복제를 명령한다. 이것이 일본 철포역사의 시작이다. 이후 매년 4월과 10월 포르투갈 무역선 쿠루시오 해류를 타고 일본 방문 비싼값에 화승총이 팔린다는 사실이 소문난다 핀투와 함께 다네가시마에 표류해 온 중국해적 왕지는 일본 고토를 근거로 중국과 일본의 무역을 개시한다 이후 고토에 수백척의 배가 드나들며 중국물자와 일본은 교역을 시작 - 개항의 시작 오다 노부나가 서양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오다 노부나가 1548년 막부가 스페인과 무역..
논문의 제목은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으로 국제법상 전시중립제도의 발달에 관한 내용 1910년 6월 14일 프린스턴 대학 졸업식날 이승만은 박사학위(Ph.D.)를 수여받았다. 이승만의 논문은 웨스트 학장의 주선으로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미국에서는 권위 있는 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된 서적을 학술적으로 가장 높이 쳐 준다. 이승만의 졸업논문은 조선인 최초로 미국 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된 책자였다. 내용 이승만의 박사논문은 해상무역에 대한 규제를 중심으로 19세기 중엽까지 전시 중립법의 발전을 시대적 변천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국제법상 “중립”이란 무력분쟁시 교전 당사국이 아닌 일반 국가들의 법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