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GyF4Sx70w 대한민국이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좌파들이 많이 합니다. 주로 비교를 하는 대상이 나찌 부역자를 프랑스는 철저하게 했는데, 우리는 왜 못했느냐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은 철저하게 친일청산을 했는데 우리는 왜 못했느냐 이 2가지 비교사안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못했다고 주장 합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처벌받아 감옥에 간 사람이 별로 없지 않느냐 왜 처벌 받은 사람이 그렇게 적냐, 이렇게들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대로 알면, 대한민국이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을겁니다. 첫째, 프랑스의 나찌부역자 처벌과 비교 하는것은 기본전제가 잘못 된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전쟁영웅들을 위로해주었던 해군 어린이 합창단 2016 1월에 개봉했던 영화 "오빠생각" 의 모티브이기도 한 합창단이죠 어린이합창단은 1951년 4월 한국전쟁 당시 해군 정훈감실에서 한국을 도와준 유엔군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계획하고 만든 합창단으로 부산으로 피난 왔던 서울중앙방송국(훗날 KBS) 소속 어린이들이 중심으로 7~12세 사이의 노래를 잘 부르는 어린이 25명으로 구성돼있었습니다. 지휘자는 "우리의 소원"이라는 동요를 만든걸로 유명한 안병원 선생이었고 합창단장은 해군 정훈감으로 와 있었던 정달빈 대령 이었습니다. 어린이합창단은 1953년 7월 휴전까지 군병원의 환자들을 위한 위로공연과 유엔군 부대를 찾아가서 그 나라의 민요, 동요를 부르며 유엔군 군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과연 누가 건국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존경 받아야 하나요 지금 광화문 옆의 역사박물관에 가보면 마치 김구가 대통령인듯 온통 김구로 도배를 해놨더군요. 게다가 전국에 김구의 동상은 어디서나 흔하게 서 있습니다. 청소년들 존경하는 인물중에 김구는 상당한 상위에 랭커 됩니다.(알고보면 절대로 존경 할 수 없는 인물임에도..) 그러나 우리나라를 건국한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동상은 광화문에 세워지기는 커녕 본인의 설립한 인천하와이대학교(인하대학교)에서도 끌어내려저 수십년간 학교건물 뒤에 버려져 형체도 모르게 되었고, 국회의 초대의장임에도 국회한켠에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야당 원내대표란 작자도 '런승만' 이라는 역사를 1도 모르는 망발을 서슴치 않습니다. 이게 대체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
그리고 좌파 빨갱이들이 김구 띄우는 이유 1948년 유엔 감시하의 총선이 가시화되자 월북하여 평양에 있던 박헌영은 남한의 선거를 폭력 수단을 동원하여 저지하기로 결심하고 평양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남로당에게 지령을 내렸다. 지령을 받은 남로당은 1948년 2월 7일부터 2주 동안 전국에서 “유엔위원단 반대”, “남조선 단정 반대”, “미소 양군 동시 철퇴”, “이승만 김성수 등 친일 반동분자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극렬 폭력 시위를 벌였다. 제주도에서는 ‘인민해방군’이라 불리는 남로당원들이 일본군이 남겨놓고 간 소총과 수류탄, 검 등으로 무장하고 경찰지서를 공격했고, 경찰 및 우익 청년단체를 대상으로 유격전을 벌였다. 남로당의 거센 테러 활동으로 제주도는 통제 불능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게 제주4..
중국의 작가 노신 (루쉰)의 1921년 근대소설' 아Q정전(正傳)속의 주인공의 이름은 아Q(阿큐) 입니다. 제목의 정전은 사람의 전기에는 열전, 자전, 별전, 가전, 본전등 여러 분류들이 많은데, 딱히 맞지 않아서 그냥 정전(正傳) -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 으로 쓴거같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아B정전)도 이 소설의 제목에서 착안 했다고 하네요. *** 아큐는 날품팔이를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우둔한 성격에 자존심이 무척 강한 동네 잡부 입니다. 어느날 아큐는 동네 양아치들에게 머리채를 잡혀서 담벼락에 대가리를 찧이는 수모를 당합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당장에 복수를 할 능력도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은 매우 강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치욕을 벗어날 것인가 곰곰히 생각하..
80년대 이후 태어난 인생들에게는 역사적 사실로만 인식되는 88서울 올림픽입니다. ㅎㅎ 사마란치 위원장의 TV에서 쎄울~ 하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전국이 얼마나 감격적이었는지 며칠동안 TV만 틀었다 하면 이장면 계속 봤던 기억이 납니다. 32년전 지구촌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던 88서울올림픽. 그 기념품으로는 체신부 발행 기념우표는 32종을 발행했습니다. 우표첩중 3권 입니다. 다행히 저는 올림픽 1년전에 군대 제대를 해서 사회에서 올림픽을 하루종일 맘껏 볼 수 있었습니다만 당시 군대 내무반에서 올림픽을 보게 될 군번들은 별명이 모두 "88꿈나무" 였습니다. 개막식이 선언되고 소리없이 조용한 개막식장에 가장 처음 굴렁쇠 소년이 등장하자 모두가 의외의 연출에 놀라면서 환호했죠. 아마 이 아이도 무럭..
● 1945년 8월 15일 갑자기 아무런 준비없이 해방을 맞아 온통 사회가 혼란을 겪었는데 우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해방이 되고 한달 후인 9월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새로 우표발행을 못하고 1946년 2월 1일에 기존의 일본우표에다 「조선우표」와 금액을 가인쇄하여 발행하게 되었는데 이 잠깐 사용 가인쇄 우표들을 잠용가쇄보통우표라고 부릅니다. 가진 재고도 부족해 2월부터 6월까지 겨우 5개월간 사용했다네요. ● 해방직후 기존 일본우표+잠용가쇄+해방조선우표 이렇게 마구 짬뽕으로 사용 했군요 ● 해방조선 우표... 일본에서 인쇄 (1946) 해방 다음 해 1946년 5월 1일에 두가지 동안의 "해방조선" 우표가 발행되었습니다. 액면 가격 3전, 5전, 10전, 20전(가족과 국기), 50전, 1원(태극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