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08월29일"일본국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다" 순종황제 실록 4권 순종3년 황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維新)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善後策)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支離)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功效)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內省)하고 확연히 스..
용례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신채호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역사학자 신채호의 말로 알려져 있다. 역사의식의 본질을 꿰뚫은 문장으로 꼽힌다. 이 격언이 사용된 예는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역사, 민족, 일제 같은 낱말에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다니며 신문기사와 방송, 책 제목에 두루두루 쓰였다. 특히 2010년과 2013년 두 차례의 축구 한일전에서 응원 현수막으로 등장해 대중적으로 각인됐다. 최근 일본제품 불매운동 집회에도 나왔고 지난 4월 피우진 전 보훈처장의 한국일보 기고문에도 쓰였다. 모두 신채호의 말로 인용되었다. 신채호의 며느리인 이덕남씨도 같은 문장을 ‘아버님의 말씀’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3년 7월 28일 동아시안컵 한일전 당시 걸린 플래카드 실상 신채..
이승만 “중국 공산당을 그냥 두고는 한국도 아시아도 세계도 평화는 없다” 입력 : 2020-07-08 1948년 7월 20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73세의 이승만이 나흘 후 취임식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김구(불참)와 경합한 이승만은 재적 198명 중 196명이 출석한 가운데 180대 13으로 승리했다. “민족 총궐기의 때가 왔다. 궐기하라”,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임기 중 반드시 직선제 개헌을”, “통제야 물러가라”, “독도 등대 불 켜라”, “죽일 테면 죽여라.” 얼핏 들으면 좌파나 진보 진영의 구호 같은 이런 발언과 주장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의외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3·1운동 촉발, 통일 미루는 휴전회담 반대, 민주화 진척, 자유시..
박정희의 정책을 보면 그는 우파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정책을 편 사람이죠. 좌파의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건 통제에서 나오는데 대한민국 모든 구석구석을 통제하여 그 힘을 오직 국익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만든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좌파들이 자신의 기치를 세우기 위해 내건것이 민주주의 달성 인데, 그 민주주의를 가장 앞당기고 공헌한 사람이 바로 박정희 입니다. 민주주의를 실천하기위해 제일 중요한것은 중산층의 증대에 있습니다. 국민들 수준이 어느정도 올라가야 이 동등한 한표가 옳게 행사가 되기때문에 중산층을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박정희야 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역할을 한사람 입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시기를 미룬것이고 결과적으로 그게 현명..
욱일승천기는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별다른 저항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었습니다. 잠실야구장에 모여서 단체응원할 정도로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2009 WBC 결승 한일전. 이 경기에도 어김없이 욱일기는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아무도 이거가지고 뭐라 하는 언론이나 시민단체 개인은 전혀 없었습니다. 2009년 3월로 기간 설정하고 검색해봐도 이와 관련된 분노의 기사 단 한건도 찾아볼 수 없는데요 전국민적 관심을 받던 경기에서 수백만 국민이 실시간으로 일본 관중이 욱일기 펼치는걸 봤는데도 한국에서는 아무말이 없었다는것. 그 흔한 욱일기 분노 기사 하나 안나갈 정도로 즉, 2009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이 욱일기를 쓰건 말건 별 관심 없었단 얘기 입니다. 그러나 그럼 왜 욱일기..
일본은 왜 내선일체 정책을 폈을까 일본은 조선을 그냥 단물만 쪽쪽빠는 많은 식민지중 하나가 아닌 완전한 또 하나의 일본을 만들려고 시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근대시대까지도 일본은 섬나라로서 딜레마를 심각하게 여겼고, 대륙이 모든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섬나라는 단점이 많다고 봤기 때문에 대륙으로의 진출 용이하게 하려고 서울로 일본의 수도를 옮기려는 계획안도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래서 나온게 내선일체 정책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과 황국 신민화 정책(동화정책)을 폈고, 이로인해 서로간의 교류정착도 많았고, 창씨개명, 학교설립, 자본투자 장려, 댐건설 철도건설 항구건설 등 각종 SOC 사업등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 예로 일제시대 지어진 북한지역의 수풍발전소는 아시아 최대급 수력발..
많은 부문에서 우리는 아직 극일을 해야할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기초과학 분야에서 너무나 뒤떨어져있습니다. 돈을 쓰지 않는것도 아닙니다. OECD 국가중 6번째로 연구개발 R&D 분야 투자가 많은데도 아직도 노벨상 하나 받지 못하고 있죠. 물론 쌀로 핵을 만드신 물리학자 핵대중이가 평화상을 받았지만 그게 옳은 상이 아니란건 누구나 알아서 이제 그거로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본이 받은 세계적인 과학분야 수상숫자를 살펴봤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단 한명도 못받았습니다. 노벨 상 노벨상 Nobel Prize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인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작성한 유언에 따라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 日 25+3(국적 변경)..